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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나비’ 10만 개 만들어지면 한국판 르네상스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독서모임 ‘양재 나비’는 ‘실용적 책읽기’를 내걸고 벌써 7년째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모임을 이끌고 있는 강규형 3P자기경영연구소 대표를 만나 독서 잘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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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古典)을 붙들고 힘겹게 고전(苦戰) 해본 기억이 대개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꼭 읽어야 한다고 교육받은 그 고전들, 자신의 ‘이해력 부족’이나 ‘번역의 잘못’ 등을 탓하며 책장을 덮어야 했던 기억들…. 독서라면 손사래를 치게 하는 안 좋은 인상이 그때부터 뇌 속에 내장된 것은 아닐까. 좋은 책은 으레 어려워야 하는 것일까.
매주 토요일 오전 6시 40분부터 2시간 동안 열리는 독서모임 ‘양재 나비’는 그 같은 관행에 도전하며 새로운 독서 실험을 하는 곳이다. ‘실용적 책읽기’가 모토다. 책 좀 읽는 이들 사이에서 폄하되곤 하는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독서 습관을 익힌다. 궁극적으로 개인의 삶과 조직 생활의 변화를 추구한다. 우리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이곳은 예외적 별천지다. 2009년 6월 단 두 사람이 시작해 지금은 매주 100여 명이 모이고 있다. 최근 서울 문정동으로 이사했지만 처음 시작할 때의 독서토론장이 양재역에서 가까워 ‘양재 나비’라고 이름 붙였다. 이곳에 와서 독서토론 방법을 익힌 회원들이 각자가 처한 장소에서 또 다른 모임을 만들면서 확산되고 있다. ‘마포 나비’ ‘울산 나비’ 등 전국에 나비라는 이름을 단 독서모임이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7년째 소리 소문 없이 양재 나비를 이끌고 있고, 최근 『대한민국 독서혁명』(다연)이란 책도 펴낸 강규형(53) 3P자기경영연구소 대표를 만났다.
책읽기는 ‘디지털 치매’ 특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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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점이 계속 줄고 우리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중요한 건 가정교육이다. 엄마 아빠가 책 읽는 모습을 안보여주니까 롤 모델이 없다. 오전에는 학교에, 오후에는 학원에, 저녁에는 게임과 TV에 아이들 교육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독서하는 방법과 독서의 기쁨을 어디서도 못 배운 거다. 아이들은 다 호기심이 많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까지는 누굴 만나도 다 책을 좋아한다고 한다. 초등학교 고학년에서부터 중학교에 가면서 완전히 올스톱이다.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정보를 접하기가 쉬워진 오늘날 여전히 책을 읽어야하는 이유가 있다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쓰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같이 하자는 것이다. 『디지털 치매』라는 책에 따르면, 컴퓨터만 볼 경우 점점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디지털 중독의 위험성이 심각하다. 디지털 치매를 막아야 한다. 균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학창시절에 독서를 얼마나 했나.
초등학교 때는 집이 가난해 책이 없어서 『15소년 표류기』하고 『소공녀』를 수백 번 본 것 같다. 교감선생님이 셨던 큰 아버지 댁에 가서 중학교 1학년 때 한국단편문학전집을 빌려 김동인의 ‘감자’ 부터 황순원의 ‘소나기’까지 가나다순으로 다 봤었다.
독서의 힘이랄까요 그런 것에 눈을 뜬 것은 언젠가.
대학교 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으며 확 점프를 한 것 같다. 아, 세상에 존재 지향의 삶이라는 게 있구나, 그때 충격을 많이 받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바로 이어서 읽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도 기억에 남는다.
독서에 눈 뜬 후 무엇이 달라졌는가.
80년대 초반 대학 다닐 때는 데모에도 많이 참가 했는데 그때는 운동권 책 아니면 순수문학만 봤다. 자기계발류 책들은 형이하학적이고 수준 안 되는 처세술 책이라며 경멸했었다.
그런 생각이 바뀐 것은 언제인가.
이랜드 신입사원 면접을 보고 나올 때 봉투 하나를 줬는데 교통비와 책 한 권이 들어있는 거다. 『불가능이란 없다』였다. 로버트 쉴러 목사님이 썼는데 자기계발류의 거의 원조격인 책이다. 그걸 받았을 때 ‘뭐 이런 걸 다 주냐’고 생각했었다. 8시간 면접을 봤기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집에 와 두어 시간 잔 후 그 책을 순서도 없이 들춰보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보게 됐다. ‘야 이게 무시할 영역이 아니네, 내가 몰랐었던 것이 너무 많았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강 대표의 사무실에는 번듯한 가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 인터뷰 중간 중간 책을 꺼내어 보여줬다. 빛이 바래 누런 『불가능이란 없다』의 뒷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89년 12월, 면접 후 선물로 받다’. 그 책 이후 강 대표는 이랜드에서 브랜드 CEO까지 지내며 ‘실용 독서’의 힘을 체험했다. “이랜드에는 초급·중급·고급의 필독 리스트가 있습니다. 대리 승진하려면 200권, 과장 승진 땐 300권을 읽어야 해요. 시험도 봅니다. 그런 책들을 보며 삶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그 영역이란 것을 알게 됐죠.”
두 명이 시작한 독서모임이 200개로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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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 나비’ 모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9년 당시 안경사로 일하던 박상배 본부장이 내 책 『성공을 바인딩하라』(개정판 『바인더의 힘』)를 읽고 무작정 찾아왔다. 오자마자 바인더를 보여 달라고 하더라. 책 내용과 실제 삶을 확인해보고 싶었던 거다. 두 번째 만난 날엔 ‘도서 50권’을 소개해달라고 하더라. 50권을 불과 몇 달 만에 다 읽고 다시 찾아오더라. 그때 내 구상을 여러 가지 얘기하면서 독서모임도 만들 거라고 했었다. 그러자 자기가 총대 멜 테니 다음 달부터 당장 독서모임을 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사무실 공간을 좁혀 자리를 만들어 둘이서 시작했는데, 금새 20~30명이 되면서 공간이 감당이 안 되었는데 마침 지하실이 비었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을 내고 독서모임을 위한 공간을 얻었다. 처음 1년간 모든 비용을 내가 내는 것을 보고 50~60명의 회원들이 회비를 조금씩 걷자고 해서 회당 5000원씩 내게 됐다. 지금도 월세 등은 내가 낸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이 지금은 전국적으로 200개가 넘는다.
강 대표는 전국 나비 모임이 10만 개가 되면 우리나라가 좀 더 행복하게 바뀔 수 있다고 했다. 1개 나비의 회원이 100명 정도라 치면 10만 개 나비면 1000만 명 정도가 독서를 생활화하게 된다는 얘기다. 지금은 나비 모임들이 자발적인 느슨한 관계이지만 1000개가 넘어가면 연계해보려고 한다. 협동조합 체제를 만들어 책을 공동구매하는 방안도 생각중이다. 세계로 나갈 구상도 하고 있다. 전 세계 100만 개를 만들자는 것이다.
‘나비’란 ‘나로부터 비롯되는’의 줄임말이면서, 변화의 상징(알-애벌레-번데기-나비)이자 꽃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정 독서와 자유 독서를 번갈아 가며 운영하고 있다. 전국 나비 회원들이 매년 2박 3일간 한자리에 모이는 독서MT도 연다. 약 20시간 동안 집중해서 책을 읽으며 ‘독서 힐링’을 체험하는 자리다. 지난해 5월 강원도 하이원 리조트에서 연 제5회 독서MT엔 550명이 참여했다. 올해는 8월에 열 예정이다. ‘양재 나비’ 독서토론장이 최근 서울 문정동의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옮긴 주소는 서울 송파구 법원로 127 대명벨리온 406호다. (문의 010-9654-9414/네이버 카페 cafe.naver.com/navibookforum)
실용성과 적용을 중시하는 독서토론
읽을 책을 선정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자기계발서이지만 뿌리가 있는 책들, 그 분야의 성과를 낸 사람들이 쓴 책을 고른다. 실용적이며 적용 가능한 것들, 그래서 개인과 사회와 조직이 달라질 수 있게 하는 책을 우선 고른다. 몇몇 분이 모여 함께 추천하고 토론해서 결정한다. 굉장히 엄격하다. 출판사들이 책 보내는데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거기에 흔들리면 그날로 문 닫아야 한다.
고전 읽기를 강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처음부터 고전에 바로 들어갔다가 부딪치고 깨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깨지는 경우란.
독서를 시작해보려고 고전을 잡았다가 오히려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 다닐 때 『데카메론』이란 책을 도전했는데 20번 시도하다 다 실패했다. 양재 나비가 고전을 아예 안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씩 하는데 그게 좋은 것 같다. 나중에 나비 모임이 10만개가 되면 고전만 읽는 모임도 생기지 않겠나. 유태인 독서 팀, 피터 드러커 연구 팀, 논어 읽기 모임, 전략 연구 모임 등 각종 팀들이 생기고 각계각층에 붐이 일어나면 한국판 르네상스가 되지 않을까? 지금 제가 5기째 이끌고 있는 건강 독서모임도 그런 거다.
독서 토론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테이블별로 모여서 ‘본깨적’을 한다. 본 것, 깨달은 것, 적용할 것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자기가 보고 깨닫고 적용할 것들을 얘기하는데 심플하면서도 파워풀하다. 학생 때는 재미로 독서할 수 있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적용하지 않는 책읽기는 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용성과 적용을 중시하는 거다.
자유독서는 어떻게 하나요.
각자 자기가 읽은 것을 얘기하는 거다. 7명이 테이블에 있다면 7권의 다른 책을 읽는 효과를 얻는다.
강 대표의 인생을 바꾼 책 베스트3를 꼽는다면.
베스트3로는 안될 것 같고, 먼저 아까 말씀드린 『소유냐 존재냐』와 『무소유』를 들 수 있고, 그 다음으로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 그리고 각 분야별로 다 있는데 우선 건강 관련 책으로는 『잘못된 식생활이 성인병을 만든다』 『슈퍼 미네랄 요오드』, 그리고 『성경』과 피터 드러커의 『성과를 향한 도전』을 꼽을 수 있겠다.
지속적으로 독서를 잘해나가는 노하우가 있나.
첫째, 연간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초보자라도 1년에 50권을 요구한다. 1주일에 한 권이라는 패턴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지속해나가기 어렵다. 둘째 목표를 적어 놓는 게 좋다. 우리는 바인더 쓰기를 권한다. 연간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춰 월간·주간·일간 계획을 적는다. 바인더에는 읽을 책 제목이 다 써 있다. 셋째는 독서 모임에 나오는 거죠. 남에게 가르친 것은 95%가 기억된다고 하잖아요. 혼자 읽는 것보다는 같이 토론하는 게 좋아요.
CEO들에게 독서 관련 조언을 해달라.
책 좋아하는 CEO 많다. 일반인보다 훨씬 많이 본다.
주로 어떤 책들을 보나.
아무래도 경영 관련 책이다. CEO가 모두 경영학과를 나온 것이 아니고 또 경영학과를 나왔다 하더라도 최근 버전의 경영 관련 책들을 공부해야 한다. 인사관리·목표전략·교육훈련·재무 등 많은 분야를 모르고 하는 거랑 알고서 하는 것은 다르다. 조찬 독서모임에 참석하는 CEO들이 많다.
조찬 독서모임 참석하는 CEO들 많아
회사 차원의 독서 모임은 어떤가.
우리나라 기업 대부분이 중소 규모인데 대개 신입사원 3개월 교육도 안하고 승진교육·직능교육도 없다. 할 여력도 없고 연수원도 없다. 가장 돈 안 들이고 교육부서 하나 만드는 게 독서모임이에요. 저희가 컨설팅 통해 독서모임 만들어준 회사가 120개사 정도 된다. 다 좋아하더라.
예를 든다면.
서울재활병원이라고 있다. 직원이 200명인데 7개월 정도 우리가 컨설팅했는데 지금은 자발적으로 생긴 사내 독서모임이 10개가 넘었다. 물리치료 재활 전문 병원인데, 예전엔 물리치료사들이 뼈 맞추는데 주력했다면 독서모임 이후 지금은 환자의 마음까지 이해하고 만져주는 것 같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독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것 같다. 마치 70년대 새마을운동 추진하듯이 독려하는 느낌도 받는데.
그런가(웃음). 처음 시작할 때 독립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지적 독립운동. 지하실에서 하니까 지하운동한다 레지스탕스다라는 농담도 했는데 새마을운동보다 더 찐한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이 무역량으로 보면 세계 11위 정도했었는데 최근 들어 26위로 떨어졌다. 국가경쟁력 떨어지는 게 독서량하고 비례한다. 생각해 보면 미국 문명을 만든 게 결국 ‘씽크’(Think·생각하라)지 않나. 아이비엠(IBM)의 왓슨 회장이 무너져가는 회사를 인수하며 처음 사훈으로 내세운 게 씽크였다. 그 다음에 빌 게이츠가 ‘씽크 위크’(Think Week·생각 주간)를 제시했다. 1년에 두 차례 한적한 통나무 별장에 들어가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그 다음 스티브 잡스는 ‘씽크 디퍼런드’(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를 얘기했다. 생각하지 않으면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당연히 목적지향적이어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있었다면.
제가 건강 관련 사업을 한 일이 있다. 일본에서 제품 수입하고 캔 공장도 만들고 했는데 대기업에서 100만개 캔을 먼저 만들면서 시작하는데 게임이 안 되더라. 그거 회복하는데 6~7년 걸렸다. 사무실에 조폭까지 와서 협박하고 힘들었다. 그때 한 선배를 만났는데 『관계우선의 법칙』을 소개해주더라. 그걸 읽고 고통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또 하나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보는 게 『그래도』라는 책이다. 절판됐는데 내가 살려내고 싶다. 테레사 수녀님이 아주 좋아했던 책이다.
아파본 적은.
폐기종 수술을 세 번 했다. 병원에선 원인을 모른다더라. 그렇게 아프면서 건강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건강서를 500권 정도 보니까 좀 알겠더라. 그래서 건강독서 모임을 운영하게 됐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대한민국에 회사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과 대안학교 이런 것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를 300개를 만드는 거다. 그런 공동체를 전세계에 전파해 나가고 싶다.
배영대 - 2014~15년 중앙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문화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서강대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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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1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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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사매거진> 2016년 06월 23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