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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저는 꿈꾸던 담장에 올랐습니다”
이 책은 슬립링코리아 정재영 대표의 살아온 삶에 대한 성찰이며, 앞으로 살아갈 생의 후반전을 위한 자산이다. 저자는 회전하는 기계장치에 전선의 꼬임 없이 전류를 원활하게 공급해주는 자동화 장치의 필수품, 슬립링의 국산화를 이루어냈다. 100세 시대에 진입한 21세기, 그는 주어진 시간이 길어진 만큼 삶의 의미가 더 가치 있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천명의 나이로 생의 반환점에 서게 된 그가 『거북이 담장에 오르다』를 통해 세월 속에 담긴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놓았다. 흑백사진처럼 펼쳐진 지난 시간을 되돌아봄으로써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밑그림을 더욱 의미 있게 그려보고자 한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개척할 대상이며, 행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는 ‘진정한 성공’을 위해 수없이 많은 갈림길에서 올바른 선택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후회를 줄여나가고자 했다. 게으름과 안일함을 경계하고, 어떤 일을 하든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맡은 일에 애착과 책임을 갖고 주인정신으로 일했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위기는 기회가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될 수 있음을 몸소 경험해온 저자는 하루하루가 인생에서 가장 멋진 날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다. 그의 발자취가 절망의 끝자락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으로 전해지길 바란다.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그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저자는 어릴 적 기억 속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던 어머니와 항상 술에 의존해 있던 아버지로 인해 지독히도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삶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정반대로 살면 된다는 원칙을 갖게 된 것이다. 술에 취해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는 아버지와 다르게 특별한 일이 없어도 늘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고, 행여 아버지를 닮아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중독이 될까 염려하는 마음에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아버지는 무능했고 가족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다. 그래서 어린 자식들은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고, 마음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는 가족만큼은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아내를 배려하고 사랑하며, 자식들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고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다행히 아버지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는 아들이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다시 돌아보니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아있음을 느꼈다. 바로 가족들을 향한 사랑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풍족함을 선사해주지는 못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이를 닮아 그 역시도 가족들이 기쁘면 함께 행복하고, 슬프면 함께 아팠다. 그에게 가족은 삶의 원동력이었다.
“창업자금이 100만 원이었다고? 설마!”
슬립링은 놀이공원의 회전체 기구부터 최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설비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독일은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기계 관련 유통 및 무역회사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슬립링을 접했다. 한국과 독일 그리고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오가며 영업과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담당하면서 점차 슬립링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일을 향한 그의 열정은 단순히 유통을 넘어 기술개발에 돌입하게 했다.
그는 전 재산이 100만 원인 상황에서 창업을 했다. 자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지인의 공장 한 칸을 얻어 사무실 겸 작업장으로 사용했다. 가진 돈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벌어서 갚기로 한 것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다. 실패하면 기회는 두 번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좁은 작업장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잘 틈도 없이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유럽을 오가며 슬립링의 제작 원리와 성능을 배웠던 경험을 토대로 설계도를 그리고, 슬립링 제작을 위한 시연을 했다. 밤을 지새우며 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더는 물러설 데가 없다는 절박함이 육체의 피로도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뛰어난 기술력과 합리적인 가격,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어냈다.
“초심을 잃지 말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경영자의 리더십에 관련된 책을 보면, 그들은 대체로 초심을 기억하고 매사에 감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더 큰 미래를 위해 지금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10여 년간 슬립링코리아를 경영해온 정재영 대표 역시 ‘초심을 잃지 말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감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는 점에서는 여타 경영자들과 달랐다. 그는 바로 여기, 현재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리더의 철학은 회사의 명운을 결정하고 임직원의 행복에도 기여한다. 그는 항상 지난 시간을 반추해보며 나아갈 방향을 결정했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로 이어지고 내일의 성공을 여는 열쇠가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초심을 중요시했다. 그에게 초심이란 더 나은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 주어진 것에도 감사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초심을 잃어버린 리더는 위기라고 말하면서 자신은 노력하지 않고 직원들을 옥죈다. 초심을 기억한다는 것은 간절함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절박한 심정으로 매 순간을 대하며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또한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을 경계했다. 슬립링코리아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지속적으로 신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했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리더와 직원들로 구성된 기업만이 해가 거듭될수록 성장할 수 있다. 이제 슬립링코리아는 국내를 넘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이유연 기자 (lyy@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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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2019년 07월 19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