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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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담장에 오르다』 정재영 저자 인터뷰
높은 담장 너머로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향한 발걸음!
우리 모두 높은 담장에 오를 수 있다. 오늘도 쉼 없이 담장에 오르는 거북이들에게 희망의 손길을 건네다!
『거북이 담장에 오르다』는 저자님께서 오랜 시간 써오신 일기를 엮어 출간한 책입니다. 세월 속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가 됐기 때문일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으로만 가능하던 100세 시대가 현실이 됐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누구나 한 세기를 살아갈 수 있게 됐죠. 저는 주어진 시간이 길어진 만큼 삶의 의미가 더 가치 있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생의 반환점에 들어선 지금, 하나의 매듭을 짓고자 했습니다.

아직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여전히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출간하게 된 건 살아온 시간이 살아갈 시간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밑그림을 더욱 의미 있게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삶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고뇌를 가감 없이 적어 내렸습니다. 작은 성과를 부풀려 과장을 하지도, 부끄러운 기억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거북이 담장에 오르다』는 지나온 삶의 성찰이자 앞으로 살아갈 생의 후반전을 위한 자산입니다. 삶의 굴곡마다 제가 겪었던 고민과 선택,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환경을 극복하려는 실천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평범하지 않았던 환경을 극복하려는 실천’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사례를 한 가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유년 시절부터 지독히도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늘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가난을 면하기가 참 힘들더군요. 창업하기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월셋방도 감당하기가 어려워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조카 집에 얹혀 지냈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카의 집마저도 경매에 넘어갈 상황에 처했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방법을 강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경매로 집을 뺏겼으니 경매로 새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부터 경매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경매에 관한 책을 구매하고,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사흘 밤낮을 꼬박 새워가며 공부한 덕에 부동산에 문외한이었던 제가 경매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매 당일 25평의 다세대주택을 낙찰받았습니다. 물론 낙찰 납입금의 절반 이상은 대출로 충당해야 했죠.

저는 이 경험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막연히 행운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실낱같은 기회라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집을 얻게 된 데에 있어 제가 운이 좋았던 것은 맞지만, 그 운은 전적으로 제가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세상에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행운이 굴러 들어오는 일은 단언컨대 없기 때문입니다.

저자님께서는 단돈 100만 원으로 창업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슬립링코리아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취업했습니다. 10년 정도 기계 관련 무역 및 유통회사를 다니다가 독일 슬립링 제조사의 국내 판매사로 이직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슬립링을 처음 접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한국과 독일 그리고 국내 굴지의 기업들을 오가며 영업과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런데 열정이 넘쳤던 탓에 슬립링의 제작원리와 성능을 꼼꼼히 배우다 보니 유통을 넘어 자체 기술로 제품을 개발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전 재산이 100만 원인 상황에서 창업을 했습니다. 굉장히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100만 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을 하며 인연을 맺었던 지인의 공장 한 칸을 얻어 사무실 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가진 돈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는 벌어서 갚기로 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한 달이었습니다. 한 달 뒤에 작업장 월세를 줘야 했습니다. 여기서 실패하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밥을 먹을 새도, 잠을 잘 틈도 없이 좁은 작업장 안에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습니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으로 육체의 피로도 느끼지 못하고 밤을 지새웠습니다.

인생에는 결코 헛된 경험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 회사에서 슬립링의 설계도를 그리고, 제작을 위한 시연을 했었던 경험이 토대가 되어, 한 달 만에 뛰어난 기술력과 합리적인 가격,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매출은 매달 두 배씩 성장했고, 1년 뒤에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먼저 담장에 오른 거북이로서, 간절히 원하는 꿈을 향해 높은 담장에 오르고 있는 또 다른 거북이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혹시 알렉스 헤일리를 아실지 모르겠네요. 『뿌리』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입니다. 그의 거실에는 담장에 오른 거북이 사진이 있다고 합니다. 험난한 길을 걷다 보면 누군가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기꺼이 디딤돌이 되어주기도 하죠. 알렉스 헤일리는 이러한 사실을 잊지 않고자, 담장에 오른 거북이 사진을 보며 감사하는 법을 깨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길렀다고 합니다.

누구에게나 간절히 원하는 꿈의 담장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꿈꾸던 담장이 있었고, 어느덧 그 위에 올랐습니다. 한평생 느린 걸음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혼자 힘으로는 절대 오를 수 없는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아내의 희생, 그리고 슬립링코리아 임직원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평범함마저 사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운명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견뎌왔기에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림자처럼 꽁무니를 따라다니던 불행이 세월의 흐름 속에서 행운의 여신으로 서서히 변할 수도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아기 새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창공을 향해 날아오른다고 합니다. 여러분께 이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위기는 기회가 되고 절망은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걸 말입니다.